[썰] 우유 나누기 딱 좋은 날씨다. 우유 에피소드.






2016 수능이 지나갔다.

수능날이 지나가길 퍽 기다렸던 이유가 있다. 우유 배달지인 여고들의 3학년이 수능과 동시에 빠져나가면서 우유 배달 양이 소폭 감소하기 때문이다. 한 학년 없다고 뭐 크게 달라지는게 있겠냐할수도있겠으나 꽤나 그 차이가 크다. 요즘은 덕분에 평소보다 30분정도 빨리 퇴근하는 편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벌써 햇수로 2년이 넘어 3년이 되어가는 우유배달 아르바이트 썰 중 몇개를 풀어볼 생각이다. 지체하지말고 시작하자.





한 한달쯤 전이었나? 사람과의 관계때문에 유난히 기분이 좋지 않던 그때에도 난 평소와 같이 새벽에 일어나 우유 배달을 하고 있었다. 학교 내부의 각 반에 우유 박스를 하나하나 다 넣고 다 먹은 우유박스를 수거하는게 내 일인데, 당시 수능이 얼마남지 않아 한 여고생이 아침 일찍 등교해있었다. 평소에는 내가 왔다가도 얼굴도 안돌리던 그 학생이 내가 교문을 열때부터 뭔가 나를 유심히 구경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무시하고 새 우유박스를 내려 놓은 뒤 다 먹고 수거해야 할 우유박스를 집으려는데 왠 아이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무장해제. 그 당시 좋지 않았던 기분이 살살 녹는 느낌이 들었다. 요녀석. 누가 만들었는진 몰라도 이 날 하루 내게 생각없이 미소띄게하는 선물을 주었다. 원래라면 재활용이 될 수거박스에 있는 이 아이를 차에 데려왔다. 다 쓰고 쓸모없어진 방향제를 떼고 그자리에 우유 빈박스를 꾹 붙였다. 자, 이제 너는 매일 새벽 나와 같이 움직이는거야.



항상 그렇게 반겨주렴 ㅋㅋ


여전히 내 차에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이와 이를 만들어준 모 김영만 여고생에게 감사하다.








요즘 날씨가 제법 쌀쌀한것이 우유 나눔을 다시 재개하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벌써 한두달 전부터 거주하는 원룸 내 1층 현관에 이웃들을 위해서 우유 나눔을 다시 시작했다. 우유 나눔에 대한 포스팅은 지난번에도 했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넘어간다.

[썰] 우유 나눠드립니다! 자취생이 전하는 우유 나눔 에피소드 보러가기

매주 수요일, 금요일에 학생들이 먹지 않은 흰우유를 한보따리씩 챙겨온다. 부모님도 지인들도 우유를 좋아하는 사람이 꽤 많아서 가져오기 시작했다가 일을 벌이게 된게 벌써 작년. 어쨌든 다시 우유를 나눠보기로 했다.



이 날은 두보따리나 가져왔었군



우유는 보관이 생명..이라지만 이를 다 소화하지 못하는 원룸 냉장고 ㅠ




차곡차곡 매 수요일 금요일마다 펼쳐지는 우유 테트리스.




집에 찾아온 M의 말에 의하면 무슨 팻말에 저렇게 빼곡히 글을 써놨냐는데. 행여 이웃들이 글을 읽다가 누군가 나타나면 꽤 뻘쭘해 하지않겠냐는게 M의 생각이었다. 일리가 있기도했고, 가독성도 별로 없어보일 뿐만아니라 정확한 목적만 전달하면 될 것 같아서 팻말 개조에 나섰더랬다. 심플 이스 더 베스트.



하긴 좀 설명이 길긴했다. 시시콜콜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자.




간단하게 포스트잇 노란색 두개로 원래 팻말의 설명들을 덮어버리고,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정말 필요한 말만 적었다.

적고나니 깔끔해서 좋다.  


뚝딱뚝딱. 꾸미는건 고사하고 심플심플.



우유를 넣고보니 박스가 사네 살어.



맛있게 드시라요. 이 동네 슈퍼 콘푸라이트 매출은 내가 띄우갓어!









제공하는 우유들은 생각보다 원룸 내에서 인기가 좋다. 오전에 등교하면서 우유를 놓고 저녁쯤에 집에 돌아올때 보면 대부분 사라져있는 경우가 많다. 우유가 많이 사라져있으면 있을수록 뿌듯한것이, 내 자식들 먹이는 느낌마저 든다. 아, 말은 바로하자.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유 나눔은 계속됐고 날씨는 점점 더 쌀쌀해졌다. 첫번째 학교를 배달하고있을때 떠오르던 해가 이젠 세번째 학교를 배달하고있을때 나타나고있는 요즘. 평소와 같이 우유배달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계단을 오르는데 뭔가 우유 나눔박스를 왠지 확인해보고싶은 생각이 문득 들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뭐지? 뭐가 들어있다.


거기, 누구 계세요?




닥터유가네 에너지바 사장! 어이구 이거..반갑구만, 반가워요! 88



절대 이런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반대로 내게 호의를 베풀어주었다는 사실이 꽤나 나를 기분 좋게했다. 

밤 9시까지 전공시험을 치루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보기만해도 흐뭇한 에너지바를 꺼내 한입 물었던 그 때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작은 일에 크게 기뻐하는 내 스스로가 또 마음에 들어 스스로에게 토닥토닥도 해주었었다. 

아, 감사인사는 또 있었다.




별거 아니라니요. 하루 동안의 기쁨을 선물하셨는걸요.



초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 내가 이 초코 머핀을 맛나게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치웠던걸보니 꽤 맛있었나보다. 생각해서 챙겨주신 이웃분께 마음으로 감사드렸다. 앞으로 꾸준한 우유 나눔으로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덴마크류나 빙그레류 우유도 껴서 나눠줘야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보통 블로그 포스팅을 구구절절 길게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좀 간단하게 해보았다. 글이 너무 길다는 지인들의 피드백이 여러번 있었기에. 아직 우유배달에 관한 썰은 꽤 비축한게 많다. 그 새벽, 학교에서 나를 공포에 떨게하는 것들이라던지 학교를 지키는 주사님들과의 여러 썰들이 차곡차곡 내 노트에 적혀있다. 더 길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그것들은 다음 썰에 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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