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끝을 모르는 잔인한 심장폭행범




 벌써 한 달이 더 되었네. 비가 눈이 바뀔랑 말랑 하려던 저녁. 나갔다 올 일이 있어 차를 빼려 하는데 뭔가 '낑' 하는 소리. 

뭐야? 하고 물어보니 뽀얀색 작은 똥깡아지가 내 차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모양이라고. 차에서 다시 내려 확인 해보니 내 차 뒤에 주차 되어있던 차 밑에 복실복실한 털뭉치가 보인다. 혹시 차 타이어로 밟았나 싶어 걱정했는데 그저 엔진 소리에 놀라 소리를 낸 듯 했다. 가까이에서 보진 못했지만 얼핏 보더라도 상당히 깨끗한 상태에. 고놈 참 마스크가 여럿 관심 끌기 어렵지 않을 귀여움. 이 정도면 생후 몇 개월이지? 게다가 추위에 벌벌 떠는 스킬이 시너지 효과가 대단하다. '키워. 키우라고'. 하는 눈빛과 몸짓.



 일단 정해진 시간이 있어 다시 차에 타면서. 두 시간 후에도 같은 자리에 있다면 일단 놈에게 천하장사 소세지 정도는 물려주자. 하고는 차를 몰았다. 두 시간 내내 머릿속에서 흰색 가래떡이 사라지지 않았다. 주인이 있을 법한 깔끔함인데 어쩌다 혼자 남게 된 것인지...잘하면 이 떡 오늘 내가 단단히 깨물어 찜콩빵콩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집에 돌아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부리나케 같은 자리를 확인했더니 다행히(?) 아직 따끈따끈한 똥깡아지가 부르르르 몸을 떨고 있다. 다섯 걸음 정도의 거리에 쭈그려 앉아 조용히 보고 있자니 그르릉 거리는 녀석. 나름 경계 태세를 보이는 모양인데, 앙증맞은 앞다리는 구르지 말고 했다면 거의 통했을지도. 

'이리와~' 불러 보았다. 세네번 부르니까 그르렁 거리는게 차차 멎는다. 경계심을 없애기 위해 손을 내밀어 부르는 제스쳐를 하며 계속 이리와~ 시도.  이리와~





무릎과 정강이 사이를 제대로 하키 퍽에 맞은듯한 심장의 통증. 쿨럭!



 자세를 낮추고 계속 시도한 끝에. 먹을 것으로 꼬셔야 하나 싶을 즈음에 요 똥깡아지가 차 밑에서 나올랑 말랑 앞발을 내딛었다 물렀다를 반복했다. 옳지 이놈. 미끼를 물어 부렸구만. 그르렁 거림은 이제 낑낑거림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내면에 많은 갈등이 있어 보인다. 다시 여러 번 불러보자 다섯 발자국 쯤 다가오다가 한번씩 제 2의 인격이 방해 하는 마냥 다시 뒷걸음을 쳐 차량 밑으로 쏙 들어가기를 여러 번. 줄달리기 결승전 마냥 애 태우다 드디어 내 발 가에 녀석이 다가왔다.





그렇게 올려다보면 그대로 납치하는 수가 있어



소세지 페이드아웃


 영차! 하고 끌어안은 흰구름은 낯선 사람의 품에 바르르 떨었다. 쓰담쓰담. 친구에게 전화 걸어 불러낸 뒤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천하장사 소세지 하나와 따뜻한 보리차(?) 하나 사서 조금 떼어줬더니 꼬리가 거의 트리플악셀 급. 물은 몇 번 킁킁 대더니 관심이 없어 조금 섭섭했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친구와 대화가 오갔지만 쉬이 묘수가 나오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돌오돌 떨리는 추위. 강아지 상태가 깔끔한 것으로 보아 주인이 있었을 법 하여 발견 장소 주변을 돌아다녀 보기로 한다. 그러나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에 강아지 주인을 찾아 주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주변을 봄버맨 마냥 쑤시고 다녔다. 강아지는 낑낑대며 우리를 잘도 쫓아 다닌다. 아니, 쫓아 다닌다기보단 자꾸 다리로 앵겨 붙는 것이 우리 걸음을 멈춰 세우려는 듯 했다. 임마 추우니까 얼른 주인 찾아야 한단 말여. 





쫄래쫄래. 귀여운 녀석.



 가끔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달게 쫓아가 앵기는 것이 배신감도 들고. 그 사람이 진짜 주인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다 이내 다시 돌아오는 녀석. 내 소세지 아직 소화도 다 안됐을 녀석이 그리 쉽게 배신 때리고 처음 보는 사람을 쫓아가? 그나저나 도저히 못 찾겠다 싶어 시간을 보니 벌써 돌아 다닌지 두 시간째. 발견 장소 근처의 편의점 벤치에서 술 먹는 한 무리에게 또 쫄래쫄래 쫓아가는 틈에 그 편의점에 들어가 사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다행히도 주인을 찾을 때 까지 며칠간 사장님께서 편의점에 맡아 두시겠다고. 시간도 시간인지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뭔가 헤어지기 아쉽기도 하고. 시간 지나면 보고 싶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다음날부터 자꾸 생각난다. 며칠 있다가 편의점에 찾아가 고놈 근황을 물으니 며칠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던 차에 손님이던 택시 기사님 한 분이 자신이 키우겠다고 데려가셨다고. 왜 아쉬운거지? 쳇. 애완동물을 싫어 하는 건 아니지만 집 안에 털 날리는 건 내키지 않는데. 8년 전에 두어달 정도 맡아 키워 준 코숏 고양이 이후로 오랜만에 만진 작은 염통이라 그런가. 글 쓰다 보니까 또 생각나네. 소세지만 취하면 됐지 나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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