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무전여행]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만. 나홀로 제주 무전여행기.
전편
[제주무전여행] 첫날부터 멘붕! 나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 낭만 제주도 무전여행기.
얼굴 한쪽이 점점 뜨거워졌다.
점점 느껴지는 열기에 반대쪽으로 돌아 누우며 목 언저리를 긁어댔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총각, 여기서 이러고 자면 큰일나!"
어안이 벙벙해서 눈을 연신 비비며 주변을 살폈다. 이호테우 해변가 텅 빈 주차장 옆 콘크리트 벽 근처였다. 순간 돌아오는 정신. 아 맞다. 나 무전여행중이었지. 하암...몇시려나. 나를 깨워준 아저씨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터벅터벅 그곳을 빠져나왔다. 몸엔 별 이상이 없는 것 같다. 허리가 아프거나 어디가 가렵거나 하진 않았다. 다시 한번 하품. 지난 밤에 찾아왔던 이 곳. 아침 8시의 이호테우 해변은 너무 아름다웠다.
안녕! 말들아. 밤 동안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이호테우 해변
꾀죄죄한 몰골로 다시 출발!
해변 가까이에 위치한 공중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무전여행이라도 최대한 깔끔하게 하고 다니자는게 스스로 정한 규칙 중 하나.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깔끔하고 봐야 남들이 보기에 인상도 훨씬 좋게 보이고 자신감도 더 붙을것 같아서였다. 이른 아침이다보니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고 난 이 틈을 얼른 이용해야했다. 가져간 세면도구로 세수는 물론 면도와 머리까지 감고 근처에서 바닷바람에 머리를 말리며 짐을 재정비했다. 가방에 붙여놓았던 화이트보드에 문구를 바꿔놓았다. 적당히 가방에 고정할 연결물이 없었기에 아쉬운대로 대각선으로 달아놔야했고, 그에 맞춰 글씨도 대각으로 써야했다. 과연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으나..히치하이킹의 행운을 기대하며 오늘의 목적지도 함께 써놓았다. 해변 모래를 밟으며 나 스스로에게 시작의 활기를 불어 넣었다.
파도에 쓸려온 해조류를 걷으시는 아저씨.
이호태우 해변을 빠져나와 바닷길이 아닌 도로변을 잠시 걸어야 했다. 무전여행 출발 전에 나와 비슷한 시기에 제주로 놀러 올거라는 지인 S에게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자는 말을 해두었던게 기억이났다. S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안그래도 어제 DSLR 털렸다며 하소연을 해놓은 상태였다. 어제 협재쪽이라는 말에 오늘 목적지인 협재에 도달하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바쁜모양인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협재 도착하는것도 무리일 수 있으니 가서 연락해보자 하던 참에 길가에 밀짚모자가 버려져있었다. 우와! GET!!!! 안그래도 햇빛이 따가웠는데 잘 됐다ㅎ.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여행했던 기간이 이번 여름 중 폭염이 극에 달했던 기간이라고..이 모자마저 없었으면 인종 바뀔뻔했다.
DSLR은 털리고 손에 든건 핸드폰과 셀카봉이며, 홀로여행이다보니 평생 찍던 셀카보다 제주도에서 찍은 셀카가 수십배는 더 많았다..연이어 나오는 몬난 얼굴에 사과드린다.
밀짚모자 ㅠ 진짜 너 없었으면 후아 ㅠㅠ
걷다보니 내도동이란 곳에 도착했다. 해변이 자갈밭으로 되있어 정말 인상적인곳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해변가에 내려가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 카메라여서 너무 아쉬웠다. 작년 스쿠터 여행때 두번이나 이 근방을 지나갔었지만 전혀 몰랐던 이곳을 뚜벅이로 여행하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뚜벅이 여행의 새로운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가지고 다니는 제주도 지도에 내가 이동하는 경로를 표시하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메모해 두었다. 덕분에 블로그를 쓰는 지금도 이 지도가 내 기억을 더듬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지도에 메모를 마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 내도동을 빠져나간지 얼마 안 돼서 큰 절이 보였다. 문득 다른 무전여행가가 절에서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는 글을 블로그에서 본 기억이 나서 염치없지만 남는 밥이 있는지 여쭤보기로 했다. 마당을 쓸든 식기를 세척하든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말과 함께 사정을 말씀드리자 아주머니께서는 밥시간이 지난 때라 찬밥과 국뿐이라며 이것도 괜찮으면 먹으라고 상을 차려주셨다. 바다가 보이는 뷰와 제주에 와서 처음 먹게된 쌀밥이 그렇게 감격적일 수가 없었다. 그 국과 김치를 지금 먹게 된다면 과연 그 맛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맛있게 그릇을 비운 뒤, 시키실일 없느냐고 잡일이든 무엇이든 해드리고 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지만 아주머니께선 한사코 나를 말리신다. 여행 즐겁게 하라며 아주머니는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가셔서 나는 입맛만 다시다가 다시 발을 떼었다.
감사합니다^^
다시 도로변을 걷기 시작. 폭염이 점점 옥죄어오는 날씨. 점점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가지고 다니던 생수도 다 떨어져 한참 목이 말랐다. 도로변을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나를 지나쳐 지나간 자전거가 20m쯤 더 가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 가까이 갈 때까지도 별 생각 없었는데 다가가자 남자분이 무언가를 내미신다. "더운데 이것 좀 드세요. 마침 두 개를 사서..."
아이스크림이었다. 와..정말 감사합니다ㅠ 이 더위에 정말 한 모금의 단물 같은 사람. 그분은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하시는 분이셨다. 작년에는 제주 국토대장정으로 제주를 걸었었는데, 내 가방에 붙어있는 무전여행 문구를 보고 작년 생각도 나고 해서 이렇게 멈추었다고 한다. 그분과 나는 제주여행을 주제로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언제 해도 여행 얘기는 재밌다. 파이팅을 외치며 다시 자전거를 출발시키는 그분의 뒷모습을 한 컷 찍었다. 카메라 어플을 키고 보니 이미 많이도 가셨더라. 여행을 주제로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매번 즐겁다. 그러고 보니 화이트보드가 한몫 톡톡히 한 첫 선물이었다.
아..마지막 한방울까지 흡수하리.
아이스크림은 다 먹은지 오래. 다시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예전에 처음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묵은 경험이 있는 한담누리 게스트 하우스를 지나쳐서 걷고 걷고 또 걷고. 활동중이던 상상발룬티어 팀원들이 회의도중 여행 가있는 내가 생각이 났는지 영상통화가 왔다.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나니 재밌다는 말보단 힘들단 말이 더 먼저 튀어나왔다. 통화를 마치고 마저 걷고 있는데 웬 스쿠터를 탄 여행객이 다가왔다. 친구 두 명과 함께 스쿠터 여행중인데 내 무전여행 화이트보드를 봤다고 협재 가는길이면 태워다 주겠다는 감사한 분! 정말 감사합니다 외치며 넙죽 뒷자리에 탔다. 중간에 곽지 해수욕장에 잠깐 들릴건데 괜찮냐는 물음에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했다. 내 무전여행의 첫 히치하이킹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거 생각보다 빠르게 오늘 목표 장소인 협재에 도달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객이 여행객에게 베푸는 호의를..넙죽
중간에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 잠시 스쿠터를 세운 헤프닝도 있었지만 무사히 곽지 해변에 도착! 오면서 나눈 대화를 통해 알게된 사실은 이 친구들 모두 나처럼 전주사람이라는 것. 타지여행에서 전주사람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거기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 작년에 나 홀로 제주 스쿠터 여행을 두 번 왔었던게 떠올랐다. 곽지 해변의 에메랄드빛 바다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백사장이 해수욕의 충동을 일으켰지만 좀만 더 가면 도착하는 협재에서도 비슷한 바다 색을 구경할 수 있기에 미련없이 다시 스쿠터 뒷자석에 앉았다.
드디어 협재 해변에 도착! 이동수단이 있으면 이리 빠르고 편하게 올 수 있는것을.. 새삼 문명의 편리함에 대해 생각도 해보던 스쿠터 뒷자리는 이제 끝! 고마움을 어떻게든 표현하고싶어 남정네의 번호를 따기로 결정했다. 전주가서 꼭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는 내 작업(?) 멘트에 그 친구들의 번호를 알 수 있었지만, 블로그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딱 한번의 연락과 언젠가를 말하며 연락을 마무리 짓던 기억이 나 내일이라도 다시한번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끼리 만나서 뭐해야할까는 그 다음에 생각하기로.
다시 에메랄드빛 바다가 나를 반겼다. 가방을 멘 채로 해수욕까진 힘들고 물에 젖은 옷을 입고 무전여행을 하는 것도 무리다 싶어 다리만 걷어올려 바닷물의 시원함을 느껴보았다. 뜨거운 폭염의 대항마로 손색이 없는 투명하고 시원한 협재 바다. 한 시간을 나름(?) 혼자 물놀이를 즐기고나니 급 피곤함과 졸음이 몰려왔다. 지난 밤 노숙으로 깊게 자지 못한 탓 인것 같았다. 시간은 2시. 가장 더운 이 시간을 나는 낮잠으로 더위를 피함과 동시에 체력을 보충하자 마음먹었다. 협재 해변 마을 어귀에서 해변으로 내려오는 돌계단 밑에서 계단에 의해 생긴 그림자를 방패삼아 가방을 놓고 자세를 잡았다. 졸음이 쏟아졌다.
색이 너무 이쁜 협재 바다.
사진만 봐도 시원한 발가락 사이사이.
누웠다. 낮잠 잘란다. 무전여행의 묘미는 노숙이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자가 점점 내게 벗어나기 시작하자 무릎 언저리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오더니 심지어 얼굴 한 쪽도 후끈후끈해질 때 쯤, 한 한두시간쯤 잤나?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눈을 반쯤 떴다. 초록색인지 파란색인지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원색의 원피스를 입은 한 젊은 여성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어리둥절해 반쯤 앉자 내 가방을 가리키는 여성분. 그 자리엔 웬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저는 못해본 무전여행 하시는게 너무 멋있고 응원하고 싶어요. 이 바로 위에 카페에 한라봉 슬러시 키핑 해놓을테니 더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드세요."
이게 말로만 듣던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의 실사판인가? 아직 완전히 깨지 않은 잠을 안고 넙죽 감사 인사를 드렸다. 좀 더 자라는 여성분의 말 때문은 아니고, 아직 잠이 부족해서 다시 같은 자리에 몸을 뉘였다. 나중에 육지로 돌아와서 생각한건데, 그때 내가 뭐 잘못한건가? 싶은 생각도 좀 들더라.
꼬르륵...문구가 한 몫 한것인가..
감사합니다 ㅠㅠ 꾸벅.
한두시간쯤 더 잤던것같다. 이젠 좀 일어나야겠다싶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그곳을 벗어났다. 돌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니 여성분께서 키핑해 놓으셨다던 카페 라봉이네가 눈에 보였다. 달랑 포스트잇 한장 들고 카페에 들어가서 사정을 얘기하기에 뭔가 뻘쭘. 그래도 무전여행에 뻘쭘은 사치라고 생각이 들어 문을 열었다. 포스트잇을 보여주자 알겠다는듯한 표정으로 내게 자리에 앉으면 금방 준비해주겠다는 카페 매니저(?)님. 카페엔 나만 있어 한적했고 무엇보다 에어컨의 찬바람에 시원하고 쾌적한 실내였다. 더욱 더 반가웠던것은 콘센트! 매니저님께 양해를 구하고 보조배터리와 핸드폰을 충전 시켰다. 라봉이네 카페 실내를 구경하다보니 키핑되있던 한라봉 슬러시가 나왔다. 기대했던것보다 큰 양과 맛에 다시한번 호의를 베풀어 주셨던 원피스의 그 여성분께 속으로 감사를 ㅠ 정말 맛있었다. 더웠던 속이 순식간에 시원해졌다. 무전여행에선 느끼기 힘든 꿀맛같은 휴식이었다. 1시간쯤 쉬고나서 카페 매니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긴 상황. 슬슬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했다.
한라봉 슬러시가 키핑되있던 라봉이네 카페.
와. 이건 진짜 맛있다. 다음에 여행오면 꼭 다시 먹어볼테야.
협재 근처에 새 건물이 여럿 생기고 있었다. 한창 공사중인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 와중에 교회 한 곳이 눈에 보였다. 지난번 삼천포 무전여행에서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던게 떠올라 도움을 요청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당시 젊은 목사님께서 잠자리는 물론 식사와 삼천포 명소를 보여주는 호의까지 베풀어주셨지만, 그분 말씀으로는 교회가 오히려 다른 곳보다 더 폐쇄적인곳이라며 혹시라도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때엔 교회의 도움을 받는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던게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이름이 너무 인상깊어서 아직도 기억나는 한웅 목사님. 그 일이 벌써 2년 전이다. 그래도 안하는게 해보고 실패하는것보단 낫다싶어 마침 교회 앞에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시는 어른 두분께 상황을 설명드렸다. 하필이면 그 날이 아이들 여름 성경학교 날이라서 아이들이 교회에서 잠을 잘거라 자리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감사하다고 인사드린 뒤 이젠 어딜 가야되나 하며 걷고있는데 오전에 연락 실패했던 S에게 연락이 닿았다. 자신도 여전히 협재쪽이라며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벌써부터 반가움에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S를 만난 곳은 지나쳤었던 한 이국적인 골목. 외국인들이 돌아다니고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타코 노점을 하는 곳 앞에서 만난 S가 너무 반가웠다. 같이 대외활동을 하고 있는 이 시기에, 물건너 나는 거지꼴로 S는 휴양의 차림으로 만나니 느낌이 퍽 이상했다. 외국풍의 장식품이나 물건을 파는 듯한 가게가 근처해있었고, 그 곳 아르바이트생과 주인에게 나를 인사시켜주었다. S는 그의 친언니가 근처 빅대디 게스트하우스에서 방학동안 스텝으로 일을 하게되어 언니도 만나고 여행도 즐길겸 해서 오게 된 여행이었다. 빅대디 게스트하우스엔 S의 언니 뿐만 아니라 구자매(S가 그렇게 부르더라)가 같이 스텝으로 일해 게하 주인과 총 세명의 스텝이 순환식으로 일을 하고있었다. 외국풍 물건을 파는 아르바이트생은 구자매 중 언니로, 게스트하우스 일을 하지 않을 때 이곳에서 일을 더 했는데 내가 온다는것을 S가 구자매에게도 알렸던것인지 인사를 시켜준 모양새였다. S는 타코 좋아하냐며 타코를 사줬다. 와..진짜 맛있었다. 타코가 이렇게 맛있는거였구나싶었음. 혀도 눈도 귀도 이틀만의 사치에 놀란듯했다.
타코는 사랑입니다.
S와 S의 언니가 빅대디 게스트하우스 홀에서 보드게임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재밌을것같아서 따라나섰다. 빅대디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사장님이 안에 계셨다. 구자매 중 동생과 사장님과 S자매와 함계 다섯이서 같이 보드게임을 했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안나는 보드게임. 다들 하나같이 유쾌한 성격이라서 조금도 어색함 없이 즐겁게 놀았다. 양 팔목에 손가락 자국이 새빨갛게 물들긴 했지만 정말 재밌었다. 사장님은 무전여행을 하게된 이유와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 물어보셨다. 좀 더 고생을 해야한다며 아직 멀었다는 사장님. 그러면서도 홀 마감 후 의자 일렬로 놓고 잘거냐고 말씀해주시는 사장님이 너무 고마웠다. 순간 망설였다가 홀 일을 열심히 돕기로 합의를 보고 오늘 잠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무엇보다 좀 씻을 수 있다는것에 감격..
막 손을 잽싸게 올려놓고 해야했는데 게임 이름이 뭐더라..
미인이신 사장님.
주변을 더 둘러보기보단 게스트하우스 홀 일을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에 다시 돌아왔다. 첫 임무는 홀 청소. 홀에 있는 먼지와 쓰레기들을 쓸고나니 주방 물청소 미션이 이어졌다. 열심히 바닥을 박박 닦고 구정물까지 개수구로 내려보내자 사장님께서는 자신은 이제 그만 올라가서 쉴테니 올라가기전에 생맥주 따르는 법을 알려주신다고 하셨다. 게스트하우스 특성상 여행의 회포와 다른 여행자들끼리와의 친목을 도모하는 밤을 갖기 마련인데 이번에도 단체로 친구사이인듯한 여성 무리가 늦게까지 치맥을 즐길것이라서 맥주를 시키면 계산을 받고 맥주를 내려달라는 부탁이셨다. 생맥주를 내려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여행와서 여러 흥미로운 일을 다 겪는다며 속으로 내심 기뻤다. 여행객들이 다 즐기고 올라가면 나머지 홀 청소와 뒷 마무리를 하는것이 내 마지막 미션이었다. 치맥을 즐기는 무리의 여성들 중 한 사람이 생일이었는지 생일 축하노래가 울려퍼지고 맥주 주문도 더 받았다. 맥주 주문이 없을때에는 자리 한쪽에 앉아 가지고왔던 다이어리를 작성했는데, 무전여행자인 내게 관심이 갔는데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치킨도 무려 닭다리를 건네주는 호의까지..오늘 아무래도 무전여행의 운수를 다 쓰는 날 인듯 했다.
무전여행중에 치맥이라니요.. 꿈 아니죠?
내 밤동무 뽀로로와 크롱.
샌들 모양대로 타기 시작한 발등.
여행객들이 자리를 뜨고, 나는 아까전에 돌려놓았던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꺼내어 바깥에 잘 널어놓았다. 샤워에 빨래에 잠자리까지.. 이곳은 말그대로 천국이었다. 앞으로 남은 여행동안 이런 호사는 더 없을거라며 의자 다섯개를 나란히 세우고 몸을 뉘었다. 내일은 어디까지 이동할까 막막하긴했지만 오늘 주어진 수많은 호의들에 감사하며 나름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진행상황
다음편 사진 투척
전편
[제주무전여행] 첫날부터 멘붕! 나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 낭만 제주도 무전여행기.
다음편
[제주무전여행] 나홀로 제주도 무전여행. 내 절대 내 위장은 쉬지 않게 하리. 금능석물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