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무전여행] 나홀로 제주도 무전여행. 내 절대 위장은 쉬지 않게 하리. 금능석물원.
전편
[제주무전여행]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만. 나홀로 제주 무전여행기.
아침이다. 낯선 곳에서 눈을 떴다는 말은 못하겠다. 지난밤을 뜬눈으로 새버렸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이 조식을 먹으러 내려오기 전에 블라인드를 올리고 분주하게 씻었다. 찬물은 새웠던 밤을 내 머릿속에서 잊게 해주기에 충분할정도로 차가웠다. 졸린 눈을 한 구씨 스텝이 나타나더니 뚝딱뚝딱 익숙하게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조식 요리하는 냄새가 기분좋게 풍겼다. 슬슬 게스트하우스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장님께 다시한번 감사 인사를 드렸다. 다음번에 제주여행에 놀러올때 꼭 한번 들리겠다며 무전여행의 성공기원 응원을 받고는 빅대디 게스트하우스를 벗어났다. S는 자는지 얼굴도 보이지 않아서 고맙다는 카톡 남기고 나왔다.
걷다가 또 찍음
햇빛은 여전히 따가웠다. 밀짚모자와 팔토시까지 무장하고 성큼성큼 협재를 벗어나 걸어갔다. 에메랄드빛의 바다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끝이 보이지 않는 국도와 나무들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난밤 어디로 향할지 두군데만 정해놓은 상태였으며, 첫번째 목적지인 금릉 석물원으로 향했다. 처음에 지도를 대강 봐서 식물원인줄 알고 입구까지 갔다가 석물원이란 표시에 내가 잘못봤음을 알 수 있었다. 식물원보다 석물원이 더 나았을거란 생각은 다시 석물원 입구로 다시 돌아왔을 때 든 생각이었다.
석물원답게 하나둘 석상이 등장하기 시작한했다.
숨바꼭질은 역시 머리만 가리기지.
중간중간 미안하다.
궁둥이가 많이 등장했다. 말똥을 받는 아이는 왜 궁둥이를 다 드러내놓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기저기 많은 석상들이 꽤나 우스운 모습들을 하고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나 말고 다른 관광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햇빛이 너무 따가워서 금방 몸이 지쳐버렸다. 한쪽에 동굴같은게 있어 더위를 피하고자 불쑥 들어가버렸다. 깊이가 꽤 있는 동굴이었다. 끝에는 불상이 있었다. 그 장소가 너무 시원해서 엉덩이쪽이 다 젖는것도 개의치않고 한쪽에서 30분 이상 앉아 쉬었다가 자리를 떴다.
금능 석물원 입구에 위치한 벤치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앞으로 어딜 목적지로 두고 가야할지 정해야했기때문이다. 시간은 정오가 넘어가고있는 시간이어서 배가 상당히 고팠다. 하지만 가진거라곤 정말 배고파 죽을때 먹기로한 미니 초코바와 아몬드 열알. 조금만 더 걸어서 주변에 먹을것을 좀 얻고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배가고프니까 체면이고 뭐고 가장 먼저 보이는 음식점에 들러 부탁해보기로 결심했다.
발등 인증은 꾸준히 하게되네.
걷고 걸어 저쪽 끝에 건물이 하나 보이는듯 했다. 가까이 가보니 갈치조림을 전문으로 파는 음식점이었다. 가게 내부에선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손님들이 꽤 많았고 한쪽 주방엔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나는 가게 앞 정자에 앉아 머릿속으로 수차례 갈등을 해야했다. 결국 가게 부엌이 외부와 연결되어있는 문쪽을 기웃거리다가 한 아주머니를 붙잡고 사정을 말씀드렸다. 사장님인듯한 아저씨가 오시더니 남은 밥과 반찬을 제공해주셨다. 건물 뒷편 그늘자리에 상을 하나 깔아주시고는 남부럽지 않은 반찬과 밥을 주셔서 정말 감격에 겨워했다. 허겁지겁 잡채와 반찬을 흡입했다. 뭐든 맛있을만큼 허기졌었다. 양도 상당해서 배가 불렀다. 감사히 다 먹고는 감사인사를 드리며 밥을 제공해주셨으니 일을 도와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주방에 계시는 대여섯분의 아주머니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일을 하시고 계셨다. 사장님께서는 나를 하번 훑어 보시더니 설거지를 해줄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난 기쁜 마음으로 고무장갑을 두 손에 꼈다.
남길순 없지 말입니다.
점심식사 시간대가 막 끝나고 엄청난 양의 설거지가 쌓인 상태였다. 갈치조림 접시만해도 1미터가 넘을뿐만 아니라 밑반찬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설거지를해야하는게 산처럼 쌓였다. 어머님들은 낯선 청년의 등장에 관심을 보이셨다. 어디서 왔는지부터 몇살이며 무전여행은 어떻게 하게됐는지 등 많은 것들을 물어보셨다. 아들같다며 간식도 한쪽에 챙겨주셨지만 계속되는 설거지거리 공급에 고무장갑을 벗을 단 몇초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밥을 얻어먹고 밥값을 하고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와 바로 옆에서 같이 설거지를 하시는 아주머니와 두런두런 계속 얘기를 하다보니 훌쩍 3시간이 넘었다. 그 사이에 아주머니들과 꽤 친해졌다.
끝이 없을것 같던 설거지산을 전부 타파하고 아주머니와 어린 알바생들, 그리고 사장님과 사모님이 마침내 식사를 하는 시간인 3시 반이 되었다. 아주머니들은 무전여행 하는 나를 위해 평소에 먹지않고 아껴두었던 특식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식기 정리 마무리를 하고 나와보니 한상 거하게 차려있었다. 매운갈비탕과 불고기 등 여러 음식들이었다. 맛이 장난 아니게 즐거웠다. 무전여행 하며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릴까싶어 참 많이도 먹어댔다. 사장님께서 무전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셨다. 도전에 대한 칭찬도 빠트리지 않으셨다. 내 핸드폰을 집어드셔서는 밥먹는 나와 알바생들을 찍어주시는 센스도 발휘하셨다.
필사적인 알바생들
카메라고 뭐고 일단 먹고봅니다.
식사를 끝마치고, 사장님께선 내가 일한 시간을 시급으로 쳐서 주시겠다며 갑작스레 지폐 몇장을 내게 건네셨다. 기대도 안했던지라 너무 놀라면서도 이미 받은게 너무 많은 것 같아 몇차례나 거절했다. 사장님은 정당하게 일하고 받는것이니 챙겨두고 무전여행 하면서 소중하게 쓰라고 내 두손에 꼭 쥐어주셨다. 몸둘바를 몰라하다 끝에는 기분 좋게 돈을 받아쥐었다. 정말 감사드리면서도 받은게 너무 많아 다음 제주여행때 들려야 할 곳이 또 하나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께서는 배고플때 먹으라며 옥수수도 몇개나 봉투에 싸서 쥐어주셨다. 큰 선물에 좋은 사람들까지 받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인상깊은 장소였다.
무전여행하며 돈을 쥐게될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다.
시간은 어느덧 4시가 넘은 시간. 주머니에 자리한 지폐 몇장 덕에 룰루랄라 발걸음이 가벼웠다. 걷고있는 길가에 선인장들이 즐비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지역 특산품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다음편에 이어서.
진행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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