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내가 예민한거니?

 




 0416.



 새벽 두시가 다되서야 들어온 룸메이트는 만취상태였다. 


 난 졸업작품 발표수업과 월요일 시험공부에 지쳐 저녁 식사 후 그대로 뻗었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한지 몇시간이 채 안된 시간이었다. 녀석은 토익 수업 후 밤 9시에 예정되어있던 축구를 하고 근처 술집에서 축구했던 사람들과 거나하게 걸치고 온 듯 했다. 뭐라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그대로 내 침대에 뻗어버린다. 말릴 새도 없었다. 분명 이녀석 축구로 인한 땀에 쩔어 있을 몸이었다. 신경 거슬림 경보 1단계. 허나 술이 잘못이지 이녀석이 뭔 잘못이냐 싶어 다시 공부하던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잘 골지도 않던 코골이도 술에 힘입어 유난히 두드러졌다. 당장 주말에 이불부터 빨아야겠다 다짐했다.


커피를 한 잔 할까 해서 자리에 일어섰다. 물이 끓고 익숙한 머그컵에 루카를 탔다. 자연스럽게 컵받침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있어야할 컵받침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지난 겨울에 받은 소중한 물건이었다. 좀 때가 타긴 했어도 커피 마실때마다 따스한 봄별을 떠올리게하는,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때를 떠올리게해준 것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오전에 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룸메는 내 책상에서 영어 단어를 보는 듯 했다. 뭔가 부딪히는 소리. 룸메가 물인가 뭔가 액체를 책상에 엎었나보다. 내게 사과하는데 솔직히 거슬렸지만 귀찮아서 무심하게 닦으라고만 말하고 다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그때 였나보다. 내 컵받침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버린것이.


내 컵받침은 사실 휴지 몇장을 겹쳐 놓은 것에 불과했다. 시험을 준비를 하느라 하루의 80%를 도서관에서 보내던 때, 조금은 장난스럽게 휴지를 몇 장 겹친 그 위에 펜으로 나름 엔틱한 느낌으로 그려준 컵받침. 나는 그 작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은 일렁임을 오래오래 간직하고싶어 그것을 구겨지지않게 책에 끼워다가 그대로 집에 가져다놨었다. 카누나 루카같은 믹스커피를 자주 마시는 나는 그것을 책상 왼쪽 한켠에 잘 올려두고 지금까지 수시로 짝짝꿍을 해왔다. 근데 지금 그것은 축축히 젖어 쓰레기통 어딘가에 축 늘어져있을걸 생각하니 이마 쪽 혈관이 튀어나가려는게 느껴진다. 깊은 빡침이 저 아래 곱창부위부터 올라온다.


아침 꼬박꼬박 챙겨주는 이놈 우쭈쭈 해주려고 내일 초밥 사준다고 약속해놨는데 초밥은 개뿔. 내 컵받침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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