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무전여행] 첫날부터 멘붕! 나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 낭만 제주도 무전여행기.








한달 전 추석 때. 한창 노홍철의 예능 복귀작이라며 시끄러웠던 파일럿 프로그램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잉여라는 타이틀을 달고 선정한 인원 치고 잉여들이 아니라는 논란에 휩싸이긴 했지만 프로그램의 의도와 상관없이 난 내 지난 기억들을 떠올리기 바빴었다. 지난 여름에 떠났던 제주 무전여행과 부분부분적으로 겹쳐서 마냥 남일 같지만은 않았던것이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처럼 큰 스케일의 무전여행은 아니지만 나도 이번에 나름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며 비행기표만 들고 제주도로 훌쩍 떠났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그 무전여행을 포스팅하기 시작한다. 지난 여름 7월 말~8월 초. 하필이면 폭염주의보가 한창인 그때. 난 패기와 낭만만 짊어지고 제주도로 호기롭게 출발했다. 



무전여행은 내 버킷리스트 목록에 들어가있던 항목이었다. 대외활동 '열정대학'을 통해 조 단위로 1박2일의 무전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지만, 기간도 인원도 그리고 결과물도 성에 차지 않았었다. 언젠가 다시 제대로된 무전여행을 홀로 다녀와야지라는 마음만 품고 버킷리스트에만 담아두고 있었다가 올해 초, 모 통신사 광고에 배우 정우가 광고 컨셉으로 '연결의 무전여행'을 들고 수시로 눈에 띄던 차에 이번 여름방학땐 꼭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음만 그랬지 여행계획에 관한 것은 출발 직전날까지 조금도 신경도 쓰지 않았고 비행기 티켓도 출발 일주일전에 끊어서 생각보다 비싸게 티켓을 사야했다. 아무래도 무전여행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과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불확실함이 비행기 티켓을 끊기를 질질 끌었었던것같다. 일주일전에 겨우 끊은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하도 무전여행에 대해 자랑하듯이 떠벌려 놓았던 덕분인듯하다.  



출발 직전 날, 지인 J의 뮤지컬 공연까지 보고나서 밤 12시가 되서야 무전여행 준비물을 꾸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P에게 보조배터리를 빌리고, 또 M에게는 에그와 셀카봉까지 빌려가며 한껏 민폐를 부렸던 밤이었다. 미리미리 좀 해놓을껄 하는 후회는 하도 많이 하던거라서 이젠 자기반성도 사치다. 팔에 착용할 쿨토시, 수분을 빠르게 말릴 수 있는 스포츠타올, 썬크림과 CC크림까지 챙겨갔다. 옷은 반바지 한벌, 청바지와 슬랙스 한벌에, 웃옷은 4종류의 반팔티로 꽤 많은 옷을 챙겨갔다. 후회할걸 알았지만 나야 매번 없는것보다 있는게 낫다는 욕심쟁이라서 마음 편하고자 아낌없이 쑤셔넣었다. 옷을 돌돌말아 고무줄로 고정하면 부피를 줄일 수 있다는 지인의 팁을 충실히 이행했다. 출발 직전이 되서야 지난번에 호기심 삼아 검색해서 찾아본 다른 무전여행자들의 팁 중 화이트보드가 떠올라서 급하게 문구 판매점에서 몇천원에 하나 구입했다(맨 윗사진). 그리고 난 이 구매행위가 무전여행 준비에 있어서 베스트로 잘 한 일이라며 여행 내내 연신 마음 속 따봉을 외치게된다. 엄청 걸을거라 예상하여 운동화를 신고가야하나 싶었지만 난 내 발바닥을 믿고 단촐한 샌들 하나만 신고 출발했다. 무전여행의 루트는 간단하다. 제주도를 해변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바퀴 빙 도는 것. 자, 지루했지?  드디어 출발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지나가는 청소 아주머니께 빈 페트병을 얻을 수 있는지 여쭈었다. 손쉽게 패트병을 얻어 화장실에서 깨끗이 세척하고 정수기를 이용해 물을 채웠다. 공항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것 하나만 해도 엄청 시간이 걸렸다. 꽤나 복잡했고 차가 많았기 때문. 나처럼 무전여행자들이나 뚜벅이들을 위한 배려는 부족했다. 가장먼저 용두암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명소는 그곳이다. 지난번에도 한 번 가본 곳이기에 익숙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멀리서 용두암이 보이기 시작하고, 중국인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용두암보다 처음 사용해보는 셀카봉의 신세계에 더 관심이 집중되어있었던것같다. 그때 보았던 바위는 여전하였더라.(용두암 절경이 더보고싶다면 지난해 갔던 제주 스쿠터여행기 포스팅을 보셔) 점점 중국인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서 속히 이곳을 탈출해서 날이 어둡기 전에 잠자리를 구해야했다. 용두암 전용 주차장쪽 공중전화박스에 잠시 들어갔다. 양손에 들고있던 짐이 많아서 가방도 정리할겸 들어간것이다. 그리고 난 이 공중전화박스를 잊을 수 없게된다. 

다 정리했다며 기세좋게 걷던 걸음은 채 100미터를 걷지 못하고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한쪽 어깨가 허전했기때문이다. 위의 사진처럼 어느정도 무게감을 주어야했던 DSLR이 없었다. 이런! 정리하면서 공중전화기 위에 올려놓고 깜빡했나보다싶어 부리나케 달려 공중전화박스로 달려갔지만.....그렇다. ....없더라. 그새 사라져있더라. 으아!!!............................%EB%86%80%EB%9E%8C%20%EC%9C%A0%EB%A0%B9

아닐거라며, 착각했을거라며 주변을 샅샅이 아주 샅샅이 살폈다. 카메라를 들고있는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리기도했다. 역시 없었다ㅠ 말그대로 멘.탈.붕.괴. 미쳤지 미쳤어. 정신 나간놈. 멍충이. 온갖 욕으로 스스로를 찼다. 도저히 그곳 주변을 벗어날 수가 없어 한시간동안 헤맸다. 카메라 들고있는 사람들만 눈에 띄었다. 딱히 관광 안내소나 관리소가 없는 곳이어서 문의 할 곳도 전혀 없었다. 기가 찼다. 내가 이 무전여행이 뭐라고 여기까지와서 무전은 커녕 값비싼 DSLR까지 잃어버리며 여기서 뭐하고있는건가싶은 생각이 들었다..해가 기울고 한시간쯤 멘붕상태에 빠져있다가 점점 제정신이 돌아오더군. 카메라까지 잃어버린 마당에 무전여행도 실패하고 돌아가면 아무것도 얻는게 없는 낭비여행뿐이 되지 않을거란 생각이 점점 커졌다.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지만 용두암을 벗어나야했다.


 




어두워지는 제주와 시무룩해진 발님.


 

 

어느덧 해는 저물어 바다 수면과 맞닿기 시작했다. 이제부턴 핸드폰 카메라에 의존해야했다. 사진이고뭐고 잠자리가 가장 시급했다. 허기도 느껴지기 시작했을쯤엔 이미 사방이 어두웠다. 해수욕 관광객들에게 천원씩 받고 샤워시설을 이용하게 해주는 할머니께 무전여행자라며 마을 관리사무소같은 건물이 어딨냐고 여쭙자 왠 횟집을 가리키신다. 차마 횟집에 들어가서 재워달라고 할 수가 없어 그대로 지나쳐 더 걸었다. 여전히 무전여행 초짜였다. 24시 사우나 찜질방건물이 크게 있었다. 중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찜질방이었다. 손님 행렬이 끊킬때를 기다려 프론트로 조심히들어갔다. 사정을 얘기하고 일을 시켜주면 달게 일을 한 뒤, 하루 묵을 수 없겠냐고 여쭤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다시 뚜벅뚜벅 걸었다. 가지고있던 물도 다 떨어지고 슬슬 몸이 지칠때쯤 24시편의점을 발견하곤 다리라도 좀 쉬게하려 무턱대고 들어갔다. 나보다 어려보이는 여자가 계산대에서 멀뚱히 나를 보다가 내 사정을 듣고는 흔쾌히 앉아서 쉴 수 있게 해주었다. 나를 호기심있게 바라보던 이분은 당장 먹을것 남은게 이것뿐이라며 갑작스럽게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제주도 와서 처음으로 받게 된 호의였다. 막대사탕 하나에 무한감격ㅠㅠ. 후아.. 무전여행이여..

 


쓴 경험 치유해주는 달디 단 사탕



15분정도 머물렀던것같다. 감사인사를 전하고 다시 뚜벅이 길에 올랐다. 먹을게 없으니 애꿎은 물만 들이키게 되고 이윽고 바닥나버렸다. 물은 항상 채워있어야한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약국에 들어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물을 얻으려했다. 약사님께서 주신것은 2리터짜리 생수병..주는 것이니 달게 받고 나왔지만 이거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화포를 끼고 걷는 느낌이었다. 작년 스쿠터여행때 봤었던 길이 나타나 크게 길을 헤메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작은 페트병에 물좀 얻으려 들어간 약국에서 덜컥 받게된 2리터 생수



이호테우 해변 근처에 다다랐다. 목마 모양의 등대 두개가 인상적인 이 곳. 밤이 깊어 바다는 잘 보이지 않고 파도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방파제 근처에 사람들이 꽤 많이 야영 혹은 파도소리를 안주삼아 노상 술을 하고 계셨다. 몸을 좀 쉬이고자 사람들 근처에 자리잡아 앉았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 엄마는 내가 제주도에 와있는걸 모르신다. 아들걱정이 왠만한 태산 하나만큼은 되시는 분이라 마치 자취방에 있어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척 해야했다. 엄마 목소리는 물론 수화기 너머로 TV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아버지 목소리가 또다시 이번 여행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켰다. 

통화를 마치고 제주도 푸른밤 노래를 듣고있는데 왠 고양이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온다. 도망가기는커녕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하는 듯한 고양이. 내 옆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몇번 야옹거리며 엉덩이를 땅에 붙인다. 보아하니 이 장소에서 꽤나 사람들에게 이쁨과 먹을 것을 얻어 생활해온 이곳 터줏대감 같은데, 미안하지만 냥아. 줄 수 있는게 없다. 내 사정이 더 딱하단다. 5분을 그러고 기다리더니 단물빠진 껌인줄 눈치채고는 이번엔 옆 사람들 술자리 근처를 기웃거린다. 다행히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안주를 던져준다. 와.. 녀석 수완있네. 나보다 네가 낫다.


고양이가 보이시나?





노상 음주중인 사람들과 밤바다



미안하지만 내 코가 석자야..

  



배가 고파서 자리를 벗어났다. 해수욕장 어두운 주차장 한가운데에 푸드트럭이 아직 장사를 접지 않은 듯 했다. 갈등이 시작됐다.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구걸아닌 구걸을 좀 해봐? 아냐, 그럴 수 없어. 일을 시켜달라고 하고 먹을 것을 좀 얻어볼까? 글쎄 내가 딱히 도와드릴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은데.. 식의 여러 생각이 내 머리를 어지럽혔지만 허기가 결국 이겼다. 못 먹어도 고라고 시도는 해보기로 한 것.

푸드트럭의 이름은 섬처자, 둘. 사정설명에 처음에는 어리둥절 하시던 두 분은 마침 장사를 접으려했다며 앞자리에 앉아서 먹고싶은 것을 고르라는 뜻밖의 선행을 베풀어주셨다. 몇번이고 남는 식재료같은걸 주시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말씀드렸지만 내 여행을 응원한다며 계속 나를 자리하게 하셨다. 오.. 솔레미오! 감사, 또 감사합니다 ㅠㅠ 내가 무엇을 골라야할지 몰라하자 프렌치토스트가 맛있다며 추천해주셨다. 뭐든 안맛있겠습니까요. 음료까지 해서 챙겨주시는 두 분께 어떻게 감사를드려야할지, 어쩔줄 몰라했다. 꿀맛 허니맛 토스트와 음료를 달게 먹은 뒤, 무전여행 취지와 여정을 물으시고는 오늘 있었던 안타까운 일까지 들어주신 두 분에게 감사 직각인사를 몇 번을 하고서야 그곳에서 나왔다. 몸도 마음도 상당히 든든해졌다. 이제는 장사를 안하시는지 페이스북 페이지도 접속이 안되던데 다음에 제주도 여행 갔을때 기회가 된다면 꼭 두 분을 만나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섬처자, 둘  블로그 주소 : http://comeonsweet.blog.me) 




이 빛은 형광등때문이 아니야.. 천사님들의 아우라야..




생각해보라. 허기지고 지친 그 순간에 이 양식이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지를.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잡았다. 아무래도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았기때문이다. 바닷바람이 제법 불었지만 콘크리트 벽이 있어 바람을 막아주면서도 낮에 달궈진 콘크리트 바닥이 아직 식지 않아 생각보다 따뜻한 곳이었다. 가방을 베게삼아 덮는 것 하나 없이 누웠다. 모기가 극성이진 않을까, 다리 엄청 많고 속도도 빠르며 쥐며느리 같이생겼지만 크기는 몇십배나 큰 바닷가생물이 내 손목을 타고 올라오진 않을까 걱정이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름 노숙도 할만 하다며 긁적긁적이는 무전여행의 첫 밤이었다.



에고 자자. 자. 내일 걱정은 내일 해.





진행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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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제주무전여행]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만. 나홀로 제주 무전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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