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봄비 내리는 오늘




4월 하고도 세번째 해가 떠서야 봄비라고 부를만한 비가 내리는것 같다. 그리 매섭지 않게, 은근하게. 바닥을 적시는 빗물에 가장 먼저 땅들이 자신의 냄새를 풍겼다. 노트북과 다이어리를 들고 카페로 향했다.


일요일. 느즈막히 점심시간때가 되서야 이불을 걷어 찼었다. 최근에 새로 부양하는 동갑내기 룸메이트는 물 조절의 실패로 촉촉하지 못한 짜파게티를 차려주었다. 다음 일요일엔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가 되겠다는 말로 넌지시 쬐그만 불만을 표출했었다. 해주는대로 먹으라는 룸메이트의 친근한 받아치기가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릿속에 울려퍼진다. 내 옷 빌려입기를 즐겨하는 이녀석은 근 4일동안 핑크 핑크 그레이 그레이 순으로 내 맨투맨 티를 입고 외출했었다. 멋쩍은 웃음과 되지도 않는 애교를 피우며, 혹은 내가 외출했을때는 카톡 끝에 속이 빈 하트를 달고서, 집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실제로 우리의 동거가 시작된지 딱 4일째 되는 날이다. 시작 전부터 우려했던 불편함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건 아직까진 서로에게 안보여줬던 친구로써의 표출허용 영역을 조심조심 유지하고 있다는 것일게다. 무언가로 육제척 정신적 피로에 지쳐있을 때, 서로에겐 허용범위가 달라 비위에 거슬리는 것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 어쩌면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내가 집 주인이고 너는 세 들어오는 객의 입장이다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내 머릿속에서 안개마냥 아스라히 깔려있을 때. 두 수컷생쥐의 앞니는 드러날 것이었다. 물론 몇번의 깨물기가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 표출 영역 허용정도를 키워주리라.


예정대로라면 마지막 학기가 될 이번 대학생활이 한 달여쯤 지나는 지금이다. 5주 중 2주는 3D 프린트 교육을 받느라 분주했고, 한달의 7할 이상을 졸업작품 팀 구성원들과 만나야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전자과련 제품을 구상하고 끝에는 시연까지해야하는 졸업작품과제는 내가 무엇을 하든 마치 신발 속에 숨어들어간 작은 돌맹이마냥 내 신경을 자꾸 찔러댔다. 최근에 생각해낸 아이디어와 발표는 교수님의 너무 '쉽다'는 (한 달간의 수고를 너무 '쉽게' 단정짓는듯한 느낌의) 문장으로 우리 팀을 다시 좌절 속에 빠트렸다. 

우유배달은 3주전부터 시작되었다. 어쩜 마지막으로 하게될 반년의 우유배달 일 수도 있다. 일주일 전부턴 룸메이트녀석을 이 일에 꽂아서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자취를 시작하는만큼 어느정도의 수입원이 필요했고, 새벽에 잠깐 일하는 이 일이 휴학을 한 그 녀석에게 다른 것들을 준비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것이었다. 매주 월요일은 아름다운가게에서 초록 앞치마를 두르고 단 4시간의 캐셔가 된다. 내가 생각했던류의 봉사활동이 아님은 알지만 두세달은 더 봉사해 볼 생각이다.


중국어 공부는 생각했던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하루에도 세번씩은 하루가 32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월요일 봉사가 끝이나면 상상유니브 와인클래스에 가서 그나마 공기다운 공기를 마신다. 다른 걱정 안하고 와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와인에 대해 어줍잖은 내 생각을 뿌려댈 수 있는 시간이다. 


이번 달엔 책을 세 권 밖에 읽지 못했다. 워낙 책 읽는 속도가 더디기도하고 문장 전체를 완전히 소화해야 다음 문장을 삼키다보니 매달 읽는 책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덕분에 더욱 수시로 책을 끼고 있는다. 일부러 가방에 잘 넣고다니지도 않고 쥐고 다니기도한다. 실질적으로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거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읽는 맛 또한 그 특유의 맛이 있으며 이게 꽤나 중독성이 있다. 


4월은 아직 내게 쭈뼛대고 눈치보는듯 서있는 느낌이지만, 며칠을 새벽같이 일어나 우유를 나르고 또는 졸작에 관한 거듭된 회의나 최근 새로 만든 책갈피를 하루에도 수차례 위치를 바꾸고있다보면. 그래 이 4월이란놈은 금세 나와 한손은 어깨동무를 하고 다른 한손은 중간고사 네글자를 이혼서류처럼 들이내밀게 분명하다.


벚꽃의 호롱불은 곧이어 들이닥치는 심해아귀의 이빨마냥 나를 삼킬게분명하니 그쪽엔 눈길도 주지말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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